"국보같은 작품 해외유출 안돼…'우주' 함께 보시죠"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

“김환기의 ‘우주’가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중요한 작품이 외국에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국보같은 이 작품은 한국에서 매입해야만 한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고민했고, 마침내 낙찰을 받았습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거장 김환기(1913~1974)의 작품 중에서도 최대 크기,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5-Ⅳ-71 #200’, 일명 ‘우주’가 2019년 가을 글로벌 경매회사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출품되자 미술계가 술렁거렸다. 한국미술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미술품을 수집해 온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은 이 소식에 가슴이 아팠다. 숙고 끝에 경매에 나섰다. 현장 응찰자 3명, 전화 응찰자 1명 사이에 경합이 붙었다. 당시 환율로 약 132억원에 낙찰되면서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낙찰 기록을 세웠다.

신기록의 주인공이자 ‘우주’의 소장자인 김 회장이 처음으로 작품을 일반에 공개했다. 글로벌세아그룹이 강남구 대치동 사옥 S-타워 1층에서 운영하는 갤러리S2A가 14일부터 막 올리는 기획전 ‘화중서가(畵中抒歌) :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를 통해서다. 전시에 앞서 1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 회장은 “경합 끝에 ‘우주’를 낙찰받은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작품을 해외로 내보내지 않아도 되겠구나’하는 안도감이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우주’ 구입을 권한 지인은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그림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모은 그림들을 혼자 보는 것보다 그림을 좋아하는 일반인들과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런 (전시) 자리를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7월 S2A를 개관했고, 자신의 첫 소장품과의 인연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였다.


김웅기 회장은 최근 ‘세계 200대 컬렉터’로도 이름을 올렸다. 1902년 미국에서 창간된 미술전문지 아트뉴스(Artnews)가 33년째 매년 발표하는 ‘톱 200 컬렉터’에 올해는 김 회장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포함됐다. 그간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부부, 전필립 파라다이스 그룹 회장과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부부, 아라리오갤러리와 미술관의 설립자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등이 이름을 올린 적 있다. 김 회장은 이번에 처음 선정됐다.

이번 전시는 ‘우주’와 함께 김환기의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대표작 17점을 보여준다. “미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했다”는 김환기의 달항아리 예찬을 보여주듯 전시장 초입에는 1955년작 ‘항아리와 매화’가 걸렸다. 2011년 서울옥션(063170)에서 15억원에 거래됐던 작품이다. 그 옆 1950년대 작품 ‘귀로’에서는 정겨운 고향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2015년 케이옥션(102370) 홍콩경매에서 23억원에 새 주인 품에 안긴 그림이다. 전시는 김환기의 ‘동경·서울 시기’(1933∼1955)부터 ‘파리·서울 시기’(1956∼1962), ‘뉴욕시기’(1963~1974)를 촘촘하게 짚어준다. 김환기 작품 중 역대 세 번째 고가인 72억원에 낙찰된 1971년작 붉은 색 전면점화 ‘무제’, 지난해 경매에서 40억원에 팔린 ‘1-Ⅶ-71 #207’도 만날 수 있다. 출품작 대부분은 “소장품을 함께 향유하자”는 뜻에 공감한 12명의 컬렉터들이 무상으로 빌려줬다. 김웅기 회장의 소장품은 ‘우주’ 외에 1960년대 작품 ‘섬’까지 총 2점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우주’다. 1971년작 푸른색 전면점화인 ‘우주’는 그림 두 폭이 합쳐져 전체 크기 254×254㎝인 작품이다. 최고의 기량으로 꼽히는 뉴욕시기의 대표작이다. 김환기의 후원자이자 친구이며 주치의였던 의학박사 김마태(본명 김정준)씨 부부가 작품이 제작됐던 그 해 작가에게 직접 구매해 47년간 자택에 걸어두었다. 2004년 8월 작품을 한국으로 보냈고 환기미술관에 장기 대여했다. 이후 2019년 11월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새 주인 품에 안겼다. 당시 해외 컬렉터가 구매했고,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갤러리현대 50주년 특별전에 출품됐고, 올해 7월 김웅기 회장이 소장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육영 S2A디렉터는 “우주처럼 어둑한 공간을 조성해 몰입감을 더했다”면서 “어렵게 한 자리에 모은 작품이니 편하게 감상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 관람은 무료이나, 관람 편의를 위해 인터파크티켓을 통해 예약을 해야 한다. 12월21일까지.

 

October 13, 2022